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문단 편집) == 왜 [[뉘른베르크]]에서 개최했는가? == 최초의 나치당 전당대회는 1923년 [[뮌헨]]에서 열렸다. 하지만 1923년 11월에 [[맥주홀 폭동]]으로 인해 나치당 수뇌부가 투옥되고 나치당이 해산되면서 한동안 열리지 못하다가 1926년 나치당의 재건을 기념하기 위한 전당대회가 [[바이마르]]에서 열리게 된다. 이후 다음해인 1927년부터 나치 독일이 멸망할 때까지 전당대회는 계속해서 [[뉘른베르크]]에서 열리기 시작한다. 뮌헨과 바이마르를 오가던 행사가 뉘른베르크에서 고정적으로 개최되기 시작한 점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존재했다.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 [[슐레지엔]]과 [[동프로이센]]이 독일령이었던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독일]] 시기 [[바이에른]]은 독일의 국토 중앙부에 있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편했다. * 뉘른베르크를 비롯한 바이에른 일대는 [[신성 로마 제국]] 시기 [[선제후]]들의 모임, 속칭 [[제국의회]](Diet)가 열리던 개최지[* 늘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것은 아니었고, [[아우크스부르크]], [[레겐스부르크]] 등의 바이에른 내 기타 도시에서도 개최가 됐다.]였기에 신성 로마 제국을 계승한 '제 3제국'을 자처하던 나치 독일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누릴 수가 있었다. * 이 일대는 골수 나치당원인 [[율리우스 슈트라이허]]가 주지사[* 이 시기 나치가 조직한 행정 단위는 [[가우]](Gau)라는 것이었는데, 바이에른 북부지방을 바이에른에서 분리해서 프랑켄 주(Franken Gau)로 재편했다.]로 재임중이었기 때문에 각종 공권력 지원 및 나치에 우호적인 대중들을 동원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웠다. * 뉘른베르크 일대에는 대규모의 도로들이 잘 정비되어서 각종 퍼레이드를 진행하기가 쉬웠다. 전당대회의 주 행사는 체펠린 비행장에서 열렸다. 이후 전당대회를 전문적으로 개최하는 대회장(Kongresshalle)을 건설하였다. 설계는 알베르트 슈페어가 맡았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다가 나치가 패망하면서 미완성으로 끝났다. 전쟁 이후에는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체펠린 비행장은 공터로 방치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